본인부담금 산정특례 확정 … 10월부터 시행 당뇨병 관련 조항이 가장 큰 논란 … 당뇨 환자만 차별?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절감이라는 미명 아래 중증 당뇨병 환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본인 일부 부담금의 산정특례에 관한 기준’ 개정안을 바라본 한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의 말이다.
복지부는 개정안을 통해 오는 10월부터 환자들이 고혈압·감기 등 52개 질병을 병·의원이 아닌 종합병원 등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부담해야 하는 약값을 상향 조정했다.
현재는 환자들이 의원이든 대학병원이든 공히 외래 진료를 받은 후 그에 따른 약을 처방받을 때 약값의 30%만 부담하면 됐으나, 10월부터는 52개 질환을 종합병원 등에서 외래 진료를 받을 경우 약값의 40~50%를 부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양성 고혈압 환자 A씨는 현재 상급종합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고 있는데, 약값은 월 3만원(총액 10만원, 본인부담률 30%) 정도가 든다.
하지만 10월 이후부터 이 환자가 동일 질병으로 대학병원을 계속 다닐 경우 약값은 5만원(총액 동일, 본인부담률 50%)으로 늘어난다.
본인부담률은 20%p 증가하지만, 실제 환자 부담액은 67% 가량 더 늘어나는 셈이다.
만일 이전과 같이 약값을 3만원만 부담하려면 병·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외래 진료를 받으면 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일차의료기관 활성화와 건강보험 재정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을 살펴보면, 정부가 정책을 시행하는 데 급급해 일부 환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중증 당뇨병 환자들이다.
정부가 발표한 52개 질환 대상에서 당뇨병은 ‘혼수나 산증을 동반한 당뇨병’, ‘인슐린을 처방받거나 투여 중인 환자’를 제외한 모든 상병이 소위 ‘경증’으로 분류됐다.
이대로라면 당뇨병으로 인해 다리가 썩어가는 족부궤양 합병증을 앓고 있는 환자라도 인슐린을 처방(또는 투여)받지 않고 있다면 ‘경증 환자’인 셈이다.
이 ‘경증 환자’가 10월부터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이전보다 67% 증가한 약값을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 ‘경증 환자’에게 합병증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일 당뇨병으로 족부궤양을 앓게 된 환자가 이전과 같이 약값을 내려면, 병·의원에서 당뇨병을 치료받은 뒤 종합병원에 가서 족부궤양을 주상병으로 치료를 받으면 된다.
만일 이때 당뇨병을 같이 치료받으면 약값 본인부담률은 40~50%가 된다.
현재 종합병원 등을 다니는 중증 당뇨병 환자들 중 이러한 불편을 감내하면서, 또 담당 의사를 변경하면서 약값을 아끼려는 환자들이 얼마나 될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중증 당뇨병 환자 중 적잖은 수가 약값을 이전보다 더 지불하면서 현재의 의료기관을 계속 다닐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에게 억울해도 감내하라고 말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뇨병은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약값을 더 부담해야 하는 게 원칙”이라며 “당뇨병학회에서는 처음부터 당뇨병을 포함시키지 말라는 주장을 제기했었다. 하지만 대표적인 만성질환인 당뇨병을 제외할 경우 만성질환을 일차 의료기관에서 관리토록 하자는 제도의 의미가 무색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때문에 학회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면서 제도의 취지를 살리고자 인슐린 처방 및 혼수·산증 동반 당뇨병 환자를 중증으로 인정한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당뇨병 환자가 (경증) 대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회의 진정성을 모르지는 않지만 정책 방향과 맞지 않고, 또 세계 어느 나라든 고혈압·당뇨병은 일차 의료기관에서 관리한다”고 잘라 말했다.
‘당뇨병=만성질환’, ‘만성질환=일차의료기관’이라는 공식을 적용하기 위해 정부는 일부 중증 당뇨병 환자들이 합병증 치료를 위해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하든지, 아니면 지갑을 더 열든지 양자택일토록 강권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