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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前대법원장의 자살과 노인복지

  • amargi
  • 2006-07-11
  • 조회수 5888
지난 주에 있었던 유태흥 전 대법원장의 한강 투신자살 소식은 여러 모로 충격적이다. 그가 대법원장까지 지낸 지도층 인사라는 점, 자살의 장소로 하필이면 한강이라는 공공장소를 택했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평균수명이 빠르게 늘어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예비노인의 한 사람으로서 80대 이후의 이른바 후기노인기의 신체적 쇠퇴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자살하고 싶을 만큼 클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유 전 대법원장의 자살 이유는 건강 문제로 추정되고 있다. 요추염좌로 인한 극심한 허리통증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주로 생물의학적인 차원에서 조명되고 있다. 그러나 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자살이라는 행위에도 사회성이 스며 있다는 에밀 뒤르캥의 유명한 지적이 아니더라도, 그의 죽음은 분명 사회성을 띠고 있다. 노인이 되면, 특히 80대 후반이 되면 누구라도 노환에 걸릴 수 있고, 그러면 신체적으로 고통스럽고 우울해질 것이며, 개인에 따라서는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식의 개인적이고 생물의학적인 논리만으로 이 문제를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우선, 그의 죽음은 노인에 대한 현대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 방식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한다. 현대 의료기술이 노인의 삶에 기여하는 바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고령 노인에게는 질병의 ‘치료’보다 ‘돌봄’이 훨씬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85세 이상의 고령 노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질병을 치료할 것인지에 덧붙여, 어떻게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울 것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전통적인 ‘의료 모델’에서 벗어나 ‘삶의 질 모델’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노인들은 얼마나 ‘삶의 질’을 중시하는 돌봄의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는가? 자살하고 싶을 정도의 강력한 통증을 가진 노인 환자라면 무리한 질병 치료보다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보건의료 서비스가 제공돼야 하지 않았을까?
 
같은 논리로, 현재 임종을 앞둔 말기암 환자에게만 적용되고 있는 호스피스 서비스도 다른 질병으로 심한 고통을 받는 노인에게까지 확대 적용돼야 한다. 물론 노인에 대한 돌봄은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자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사안이다. 고령 노인들의 고통은 ‘총체적’이다.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심리적·사회적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따라서 총체적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전인적이고 다면적인 개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보건의료전문직뿐 아니라 사회복지전문직 등과의 학제적인 협력이 요구된다.
 
다음으로, 전 대법원장의 죽음은 노인을 위한 복지 서비스가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복지 서비스 전달 체계 확립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선진국처럼 동네마다 ‘복지사무소’가 있었다면, 자살하고 싶다고 호소하는 고령 노인에 대한 상담이 이뤄졌을 것이고, 알맞은 정보 및 의뢰 서비스가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노인 자신은 물론 가족을 위해서도 여러 가지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시범사업으로 실시하고 있는 복지사무소가 하루 빨리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노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받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들어 노인들의 자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노인들의 자살은 그들의 개인적, 가족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만다. 혹시, 유태흥 전 대법원장은 한강이라는 공공장소에서의 투신을 통해 노인들의 고통이 얼마나 공공연한 사회 문제인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한혜경 / 호남대 사회복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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