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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 청소하다 오염된 주삿바늘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찔려요

  • 민영수
  • 2016-01-28
  • 조회수 212

 

노동… 외면 당한 삶의 현장
병동 청소하다 오염된 주삿바늘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찔려요
 

OECD 28개 국가 중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 꼴찌(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2015), 최저임금 이하 소득 노동자가 7명 중 1명꼴로 가장 많은 나라(OECD, 2015).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노동 현실'은 국제사회 성적표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지난 한 해 일한다는 이유로 고통받아야 했던 근로자들이 현실을 짚어봤다.
 
노동… 외면 당한 삶의 현장
Getty Images Bank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병실에 무시하고 들어가려는 보호자에게 '그러면 안 될 텐데요'라고 했더니 바로 욕설이 날아오더군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조용히 뒤로 돌아 나오는 것뿐이었어요. 하는 일이 청소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을 멸시하는 그 눈빛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적응하기 힘드네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10년째 청소일을 하는 윤석현(가명·61)씨. 그는 일할 때 인간적 존중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 윤씨는 "맨 처음 청소를 시작했을 때는 사람들의 무시하는 눈길이 어찌나 낯설고 무섭던지 3개월 동안 8㎏이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병동을 청소하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오염된 주삿바늘에 찔린다. '사용한 주사기를 지정된 쓰레기통에 버려달라'는 그의 부탁은 1년차 인턴에게도 제대로 가닿지 않는다.
 
"쓰레기통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아무 데나 주사기를 버리는 의사 선생님들이 있어요. 특히 1년차 인턴 선생님들이 가장 힘들어요. 한번은 용기를 내서 조심스레 '주사기만이라도 쓰레통에 넣어달라'고 했더니 '뭐야, 재수없어'라며 눈을 흘기더군요."
 
사용한 주삿바늘에 찔릴 때마다 윤씨는 자신이 청소한 병실의 쓰레기를 검사실로 가져가야 한다. 쓰레기에서 감염균이 나오든 그렇지 않든 검사를 받는 것이 원칙이지만 절차가 워낙 복잡해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진료 비용은 회사에서 지불해주지만, 검사를 할 때마다 눈치가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자연스레 주삿바늘에 찔리더라도 검사를 받지 않고 넘기는 일이 늘었다.
 
"몇 년 전에는 동료 청소부 아주머니가 에이즈 환자에게 썼던 주삿바늘에 찔리는 사고가 있었어요. 다행히 감염이 되진 않았지만 '항암 치료보다 무섭고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만약 자기가 청소를 직접 한다고 하면 그런 식으로 주사기를 아무 데나 버리고, 피가 튈 정도로 오염된 쓰레기를 집어던질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것은 안 바라요. 청소 노동자라고 해서 무시하지 않고 조금만 신경 써서 지정된 장소에 쓰레기를 버려주는 것. 그거면 좋겠단 생각이 드네요."
 
◇'직업에는 귀천 없지만 인격에는 귀천 있어'…서비스직 존중 않는 사회
 
11년째 경기도의 한 노인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심지은(가명·45)씨의 직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고된 노동보다 오히려 성희롱과 폭력 때문에 더 힘든 현실이다.
 
"요양보호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똥이나 치우고 기저귀나 갈아주는 것들'이라고 욕하며 천대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루만 같이 자 달라고 하거나 '내 기저귀는 A씨가 갈아줬으면 좋겠다'며 성희롱을 하는 어르신도 있고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동료 요양보호사에게 침을 뱉고 폭력을 휘두르는 어르신을 말리다가 코뼈가 부러진 친구도 있었어요."
 
심씨는 "그나마 병원 시설에서 일하는 내 처지는 나은 편"이라면서 "근로 환경이 노출되지 않은 재가 (在家) 요양보호사의 경우 성희롱이나 폭력에 노출될 확률이 훨씬 높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는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을 도와드리는 사람인데 마치 하녀처럼 대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찾아가면 가족이 나서서 쌓여 있던 옷 빨래나 청소를 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심씨가 일하는 병원에서 요양보호사에게 주는 월급은 130만~140만원 선. 한 달 생활비로 쓰기 부족하지만, 업계에선 그나마 많은 축에 속한다. 비인가 시설의 경우 상여금이나 수당도 없다.
 
"불편한 어르신을 돕는 요양보호사는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지는데, 많은 사람이 이 일을 하기에는 급여나 근무 환경이 너무 열악하죠. 제대로 된 직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근로기준법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 있는 이들
 
김지연(가명·21)씨는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A카페에서 1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김씨의 시급은 7000원이다. 마감 당번이 될 때마다 밤 11시 30분까지 일을 하지만, 야간근로수당은 없다.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정해진 근로일을 개근하면 지급되는 주휴수당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이 모든 부당함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근로 계약서조차 쓸 수 없었던 철저한 '을'이기 때문이다.
 
"당장 1시간 일해서 버는 시급이 소중한 아르바이트가 '그럼 일하기 전에 계약서부터 쓸까요?'라고 말할 순 없잖아요. 일자리 자체를 잃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런 걸 먼저 요구할 수 있겠어요."
 
현행법에선 하루에 4시간 근로할 경우 30분, 8시간 근로할 경우 1시간 휴식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김씨는 점심시간도 없이 내리 8시간을 일한다. TV 광고에서도 '알바'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지만 김씨는 "여전히 사각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앞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1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때는 최저임금만 받긴 했지만 수당이나 근로기준 같은 것들을 비교적 잘 지켰어요. 하지만 개인 카페는 노동 진정이 걸리더라도 '벌금만 내고 무마하면 된다'는 식이 대부분이죠.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곳도 이미 몇 번이나 야근수당을 지급하지 않아서 문제가 된 곳이지만 잘 영업하고 있잖아요? 간혹 진정이 걸렸을 때 벌금 내는 게 더 싸고 편하니까 바뀌지 않는 거예요."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눈물짓게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중년 손님들이 오시면 반말은 기본이에요. 한번은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손님이 '거기 너 이리로 와봐' 부르더니 '커피가 너무 작고 쓰다'고 저한테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온 매장의 이목이 저에게 집중됐죠. '죄송하지만 에스프레소는 원래 이런 커피'라고 설명을 드렸더니 '알았으니까 가봐'라며 다시 소리를 지르더군요. 집에 와서 밤새 울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서울의 한 식당에서 발레파킹을 하는 이상구(가명·45)씨의 소원은 '지붕이 있는 사무실을 갖는 것'이다. 한파가 몰아치는 날에도 그는 바람을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하루 12시간씩 야외 주차장에서 근무하는 그가 쉴 수 있는 공간은 뻥 뚫린 컨네이너 박스. 대기 공간 안에 있는 가구는 전부 이씨가 직접 구매한 것들이다.
 
"사실 이 정도면 굉장히 좋은 편이에요. 아예 휴식 공간 없이 주차장에만 있어야 하는 동료들도 있거든요. 동료 대부분이 용역업체를 통해 파견근무를 하는 형태라 매장에서 이런 대기 공간을 마련해줄 의무는 없어요."
 
2014년부터 서울의 한 보육원에서 생활지도사로 근무하고 있는 장은영(가명·27)씨. 장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한 번 출근하면 48시간 동안 이어지는 근무도, 혼자서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8명 아이들의 빨래·식사·목욕도 아닌 '법인 행사'다.
 
"이틀 연속 근무를 끝내고 나면 퇴근 시간은 오전 10시예요. 10㎏ 넘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씻기고 먹이고 입히면서 녹초가 된 후라 휴식이 절실하지만, 행사가 잡힌 날에는 강압적으로 오후 4~5시까지 보육원에 남아야 하죠. 엄연한 추가 근무지만 기록에는 전혀 남지 않아요. 그냥 자발적인 참여인 거죠."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결코 협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지만, 많은 이들이 법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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