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준비 못한채 은퇴후 노부모 모셔야하는 이중고 "나도 대우받을 나이인데…" 80세 이상 老人 자살 많아 "고령화 따른 필연적 결과… 정부가 老老케어 지원해야"
85세 이상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노·노(老老) 봉양 가구가 늘고 있다. 자손들과 오손도손 사는 가정도 많지만, 노인들끼리 사는 가정에는 장수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제대로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채 은퇴한 60, 70대 자녀 노인들이 팔순, 구순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게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수가 축복만은 아닌 시대다. 더욱이 늙어갈수록 가난해지는 악순환 속에서 노인 빈곤은 노인 학대나 자살로 치닫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며느리·사위 눈치 보는 노인들
서울 영등포구에서 아들(80)·며느리(73)와 함께 사는 A(100) 할머니는 교회 목사와 상담했다. 할머니는 "며느리가 무서워 반찬도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말도 못한다"며 "내가 오래 사는 게 죄"라고 했다. 며느리와 툭하면 다퉈 며칠간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아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는 하소연이었다. 목사가 중재에 나서 화장품 포장공장에서 일하는 며느리와 상담했다. 며느리는 "내가 70이 넘은 나이에 반찬투정하는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남편도 먹여 살려야 하는 내 처지가 한심하다"며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아들은 "맏이인 내가 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당연한데 나도 몸과 마음이 지쳐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갈등만 쌓인다"고 했다. 이인수 한서대 교수는 "육순의 노인 며느리가 구순의 시어머니를 모시는 스트레스는 점차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101세 어머니 모시는 칠순 딸 - 서울 성내동에서 101세 어머니 김금순씨를 모시고 사는 딸 권옥순(70)씨가 김씨의 목에 목도리를 감아주고 있다. 이처럼 60~70대 자녀가 팔순·구순의 부모를 모시고 사는‘노·노(老老) 봉양’가구가 늘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선 노인 질병·빈곤으로 인한 노·노 학대도 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주완중 기자
부산 수영구에 사는 박모(78)씨는 장모(93)를 6년째 모시고 산다. 처남들이 모두 사망해 큰사위인 그가 장모를 모시고 있다. 그는 "장모님이 원체 성격이 까다로워 함께 사는 게 너무 불편하고 힘들다. 나도 자식들에게 대우 받으며 살아야 하는 나이인데 각자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말다툼으로 변하기 일쑤다"고 했다. 장모는 온종일 방에만 누워 있고 나도 얼굴을 맞대기 싫어해 밥상도 함께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노인 학대 늘고 자살로 내몰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노 학대도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자녀와 며느리, 사위 등 존속에 의한 학대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치매에 걸린 B(82)씨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휴가를 가자며 남해로 떠났다. 아들 내외는 그를 휴가지에 혼자 놔두고 돌아와 버렸다. 길을 헤매던 B씨는 경찰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왔으나, 아들은 "처음 본 사람"이라며 시치미를 뗐다. 결국 경찰은 관련 기관과 협의해 B씨를 요양시설로 보냈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노·노 학대 조사에 나서도 존속폭행은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가 없다"며 "피해 노인이 처벌 의지를 접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작년 말 서울의 한 노인 보호전문기관에 온 박모(92) 할머니는 울기만 했다. 할머니는 며느리(64)가 주먹으로 때려 한동안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고 했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그는 맏아들 집으로 왔으나, 아들 내외가 "재산은 동생에게 주고 빈 껍데기로 왔다"며 폭언을 하고 옷 보따리를 집어던지거나 집 밖으로 내쫓기도 한다는 것이다. 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노인이 노인을 학대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다툼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노인 자살률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것은 빈곤 노인들이 늘고 가족에게 학대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80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10만명당 123.3명이다.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우리나라 자살률(2012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29.1명)의 4배 이상이고, 10대 청소년 자살(5.2명)의 24배에 가깝다. 이심 대한노인회장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사회는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생긴 필연적 결과"라며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책임을 가정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가 시대적 변화에 맞춰 노노 케어 사업을 늘려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