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수원교구가 운영하는 동백성루카병원 2층에 있는 중앙 쉼터. 사람들이 움직이는 공간으로 나온 환자가 큰 창문 앞에서 바람을 쐬고 있다.ⓒ시사IN 신선영

병원 안뜰은 오고 가는 병동 침대로 조용하지만 분주하다. 침대는 자주 숲의 방향을 향해 선다. 햇살과 바람도 ‘약’이 된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대화에 새소리가 섞이고, 조심스레 포개 쥔 손 위로는 빛과 그림자가 어룽진다. 경기 용인시 동백성루카병원에는 ‘살리는’ 일에만 매진하는 의학이 놓친 풍경이 있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기관인 이곳은 생애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일에도 의학의 역할이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생애 말기를 고통스럽게 상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가까운 이들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유가족이기 때문이다. 변변한 임종실도 없고, 중환자실 입퇴원을 반복하게 만드는 한국의 생애 말기 의료 경험은 무엇보다 남은 사람의 기억을 혼란과 두려움으로 채운다. 탄생이 그렇듯 죽음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호스피스 병원은 ‘우리가 이렇게 죽어야 한다’ 혹은 ‘이렇게도 죽을 수 있다’는 모범답안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죽음처럼 호스피스도 보편적일 수는 없을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관련 법이 제정되고 건강보험수가 안에 호스피스가 들어오면서 환자 부담 비용은 낮췄지만, 아직까지도 호스피스 이용이 가능한 질환은 제한적이다(암·후천성면역결핍증·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만성호흡부전·만성간경화). 그나마도 인프라 부족으로 대상 환자 중 21.3%만이 호스피스를 경험한다. 유례없는 감염병은 호스피스를 둘러싼 환경을 더욱 황폐화시켰다. 말기 암 환자를 돌보는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 88곳 가운데 21곳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어 휴업했다. 대개 공공병원이었다. 헌신과 소명으로 버텨온 일부 민간 호스피스도 잇달아 문을 닫았다.

지난 6월16일 일명 ‘조력 존엄사법’이 발의됐다. 존엄에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 삶과 죽음 사이에 울퉁불퉁한 돌봄이 있다는 사실은 지난하고 복잡한 논의라 자주 제외된다. 우리는 죽음에서도 쉽고 빠른 ‘직진’을 원한다. 그사이 존엄은 오염되고, ‘수익’이 되지 않는 죽음은 정책의 후순위로 자꾸만 밀려난다.

실습을 나온 간호대 학생들이 정원에서 환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시사IN 신선영
정원은 환자와 보호자가 신선한 바람을 쐬러 나오는 곳이다.ⓒ시사IN 신선영
‘동행’은 남겨진 이들을 위한 사별가족 돌봄 프로그램이다. 목요일마다 8주간 진행된다.ⓒ시사IN 신선영
오후 회진을 도는 정극규 진료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