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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1000만명 시대

  • 가득찬항아리
  • 2022-09-15
  • 조회수 315

 

노인 1000만명 시대

추석 연휴에 동네 공원과 산책길에서 오가는 어르신들을 보았다. 올해 주민자치활동에 참여하면서 여러 경로당과 어르신 집을 방문한 덕분에 생긴 새로운 관심이다. 주민들이 귀향해서인지 곳곳이 차분하고 가끔 만나는 어르신들도 조용하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평온하신 걸까, 적적하신 걸까. 어르신 표정을 자신있게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생각은 자꾸만 후자로 향한다. 대부분 홀로 사는 분이라는 경로당 회장님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며칠 전 회의에서 들은 ‘노인 1000만명’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통계청에 의하면 65세 이상 인구가 2024년에 1000만명을 넘는다. 이후에도 가파르게 증가하여 생산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시대가 온다는데 새삼스레 겁이 덜컥 났다. 그때 나는 초고령 노인일 텐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실 노후 불안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노인빈곤율은 늘 세계 1위이다. 가난하면 삶 자체가 움츠려든다. 어디 외출하기도 어렵고, 몇천원의 병원비도 부담이다. 어르신 사이 교류도 한정된다. 우리 마을 단지마다 있는 경로당에도 매주 두세 번의 식사 제공 시간에만 어르신들이 주로 모인다. 노인이 늘고 있다는데 정작 지역 일상 공간에서는 소수이다. 

앞으로는 개선될까? 소득과 돌봄 모두에서 미래가 어둡다. 소득에선 공적연금이 핵심이다. 현재 가입자들의 노후를 대비하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제안이 나오지만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지금도 받을 연금액에 비하여 내는 보험료가 턱없이 낮기에 연금액 인상은 후세대에게 미안한 일이다. 기초연금도 계속 올라 30만원이지만 다른 소득이 없는 가난한 노인에게는 여전히 부족한 금액이다. 심지어 어르신들이 월 27만원을 얻는 공익형 노인일자리 사업은 내년 예산안에서 그 수가 줄었다. 노인들에게 일자리뿐만 아니라 소득 지원 역할도 하는 사업인데 이번 정부가 너무 박하다. 다음 순번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의 실망이 클 것이다. 

65세 기준을 높여 노인복지 지출을 줄여보자는 노인연령 상향도 불편한 주제이다. 사실 노인 연령 65세가 시대 흐름에 맞는 건 아니다. 수명은 계속 늘어나 100세시대라면서 65세부터 노인이라는 건 적절하지 않다. 일할 의지가 있고 건강하다면 사회적으로는 노인이 아니다. 

올해 통계청 조사에서도 55~79세 시민 10명 중 7명이 장래 계속 일하기를 원하고, 희망근로 상한연령은 평균 73세라고 답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이다. 은퇴 후에 일자리 구하기는 어렵고 생활비는 부족하니 삶이 빈궁하다. 이러한 여건에서 노인연령 상향은 기존 복지의 박탈을 의미할 뿐이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돌봄은 어떨까? 동네에서 갈 곳이 마땅치 않으니 주로 집 안에 머무르신다. 지난 초여름에 뵌 어르신은 반지하방에서 종일 텔레비전을 보셨다. 아마도 거동이 어려우신 분들은 요양시설에 계실 거다. 가장 돌봄이 절실하여 찾는 곳인데, 여기도 평안하지는 않다. 여러 어르신들이 손사래를 치며 거기는 가기 싫으시단다. 내가 늙어도 이곳은 오고 싶지 않다던 어느 요양사의 한탄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방치하고 있는 우리의 요양돌봄 현실이다. 

이렇게 노인 1000만명 시대를 코앞에 두고도 우리의 준비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미래가 불안하면 현재도 행복하기 어렵다. 노인의 삶이 이리 힘든데 미래 노인인 청년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노후 정책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 

고령자 소득을 위하여 ‘연성 일자리’ 망을 만들어가자. 행정이 위로부터 설계하는 노인일자리가 아니라 주민들이 아래로부터 짜가는 사회적 역할망이다. 현대사회의 생산력이면 점차 노동시간을 줄여 오후에는 사람들이 자기 동네에서 어울려야 한다. 지역에 주민들이 모이면 돌봄, 문화, 체육, 평생교육, 도시재생 등 새로운 역할들이 생길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경쟁하는 경성 일자리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협동하는 참여 일자리이다. 또한 요양돌봄을 완전 재설계하자. 지금의 소규모 상업적 체제를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사회적 요양돌봄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므로 존엄한 죽음을 위한 임종기 인프라도 절실하다. 

연성 일자리와 사회적 돌봄, 금세 달성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담대한 의지로 차곡차곡 추진해야 한다. 특히 모두 우리 동네에서 이루어야 하는 숙제임을 주목하자. 근대 혁명이 ‘국가’를 형성했다면 21세기 혁명은 ‘마을’이다. 지금도 늦었다. 노후 대계획을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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