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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공돌봄’ 마비되나

  • 가득찬항아리
  •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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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공돌봄’ 마비되나

서울시의회 “비효율” 서사원 예산 100억 삭감

전문가들 “설립 취지가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

 

11월 29일 서울시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노조가 내년도 예산 100억원 삭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연합뉴스

11월 29일 서울시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노조가 내년도 예산 100억원 삭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연합뉴스

지난 11월 22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공공돌봄기관인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서사원) 내년도 예산을 100억원 삭감했다. 서울시가 편성한 168억원 중 62.1%에 해당한다. 유만희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은 민간에 비해 비효율적인 구조를 예산 삭감 이유로 들었다. 유만희 부위원장은 “서사원과 달리 민간은 건강보험료에서 받는 수급액만으로 요양보호사 인건비도 주고 운영비도 댄다. 공공이 뼈를 깎는 자구의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서사원은 2021년 서울시 출연기관 경영평가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고비용·저효율 구조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시의회의 예산 삭감으로 서사원은 당장 존폐위기에 놓였다. 삭감된 예산으로는 내년 1월부터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서사원은 2019년 3월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인 ‘정부 주도의 사회서비스 관리 주체 설립으로 양질의 일자리 확충’ 방안의 일환으로 문을 열었다. 사회서비스원은 요양보호, 장애인활동지원, 보육 등과 같은 돌봄서비스가 공공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민간의존도가 과도하게 높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특히 소규모의 영세한 돌봄노동 제공기관이 늘어나면서 돌봄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 및 근무 환경이 문제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시·도별 사회서비스원 설립을 지원했다. 그 결과 2019년 서울·대구·경기·경남에서 사회서비스원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시·도 사회서비스원은 전국으로 확대됐다. 2021년 9월에는 국회에서 근거법인 사회서비스원법이 제정돼 올해 3월 25일부터 시행 중이다.

시범사업 이후 3년, 근거법 시행 이후 1년이 채 안 된 상황에서 사회서비스원이 존폐위기에 놓였다. ‘민간 주도 복지’로 정책 방향을 잡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이후 진행된 지방선거에서 여당 광역단체장이 대거 선출된 결과다. 사회서비스원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됐다. 서울시는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울산시와 대구시는 사회서비스원을 여성가족개발원과 통폐합했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바뀌면서 보건복지부나 중앙 사회서비스원의 기조도 조금씩 바뀌었다. 현 정부가 민간 혁신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사회서비스원에 대한 지원을 늘릴 가능성은 없다”며 “그러다 보니 시·도 차원에서 각 지자체의 상황에 맞게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는 지자체장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월급 223만원, 돌봄업계의 삼성?

2021년 4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되고 같은 해 11월 오세훈 시장의 시민소통특보 등을 지낸 황정일 현 대표이사가 임명되면서 서사원의 임금구조는 잦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서사원은 지난 10월 17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를 비판하는 보도자료를 내고 서사원 돌봄노동자의 임금이 민간보다 훨씬 높게 책정돼 있다고 말했다. “민간기관 요양보호사 급여는 평균 월 107.6만원, 방문요양은 월 80.8만원이다. 반면 서사원의 종사자(요양보호사·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월평균 223만원이다. 2배 이상 3배 가까운 임금을 받는 셈이다.” 또 서비스 제공 시간은 하루 3~4시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작년에 서사원 근로자 중 59.2%가 하루 평균 3.83시간 이하의 서비스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9160원)에 주휴수당 등을 더한 민간 시급제로 환산하면 월 92만원을 임금으로 받을 수 있다. 서사원 근로자는 223만원을 받는다”라며 “서사원은 정규직 월급제로 고용돼 계약제 시급제인 민간기관 종사자가 겪는 고용불안·생계불안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돌봄업계의 삼성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라고 비판했다.

오대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사원 지부장은 황정일 대표이사의 주장은 서사원의 설립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오대희 지부장은 “민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서사원이 만들어진 것이다. 서사원 돌봄노동자들은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시간에 회의와 교육, 사례관리, 대기, 이동 등 다른 업무를 하고 있다”라며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와 질 제고를 위해 이러한 시스템을 만든 것인데 이를 다 빼고 직접 서비스 시간만 민간과 비교를 하는 건 사회서비스원의 설립 취지 자체를 이해 못 하는 것이다. 직접 서비스를 몇 시간 하든 서사원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 시간은 노는 시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간보다 높은 임금과 관련해서는 “서사원 돌봄노동자 중 중증장애인 장애활동지원사의 경우 민간보다 오히려 급여가 낮다. 지금 서사원 돌봄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식비와 교통비를 포함해 실수령액 176만~190만원이다. 이런 처우가 높은 임금이라고 볼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서비스원을 ‘효율성’을 기준으로 민간과 비교하는 것은 설립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사회서비스원이 설립 당시 내세운 4가지 핵심계획은 질 높은 사회서비스 일자리 제공,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기관 확충, 서비스 제공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민간 제공기관 서비스 품질향상 지원 등이었다. 사회서비스원이 선도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돌봄서비스의 질을 함께 끌어올리고 나아가 민간기관 돌봄노동자의 처우와 서비스의 질 또한 견인한다는 취지였다.

민간기관 돌봄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는 오래전부터 문제로 지적돼왔다. 지난 11월 18일 강은미 의원실이 공동주최한 ‘돌봄노동의 실태와 노동권 보장&제도개선 방안’ 토론회에서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은 “돌봄노동자의 고용형태는 대부분 시간제 계약직, 즉 1년 단위 기간제와 단시간 근로관계가 중첩된 형태다. 주로 시설형 돌봄노동자는 기관의 편의대로 계약관계 단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시설운영상 상시로 필요한 돌봄노동자들 모두를 기간이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한편 방문형 돌봄노동자의 경우 사실상 기관에 등록된 상태에서 특정 수급자에 대한 급여제공이 시작될 때 비로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급여제공이 중단되면 근로계약기간 중이라도 근로계약이 단절되는 것처럼 호출노동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아이돌보미,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노인생활지원사, 장애인활동지원사 등 돌봄노동자 124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설문조사 결과 설문응답자의 고용형태는 정규직이 8.3%, 계약직이 91.7%로 나타났다.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반복갱신하는 관행을 반영한 수치다. 요양보호사의 경우 3명 중 2명은 이용자의 사정으로 갑자기 일을 그만둔 경험이 있었다. 임금은 재가요양보호사는 150만원 내외, 시설요양보호사는 200만원 초반으로 시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을 받고 있었다.

대부분의 돌봄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낮은 임금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공공도 민간과 동일하게 처우를 낮춰야 한다는 서울시의회 등의 주장은 사회서비스원의 설립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기요양의 경우 고령 여성의 저임금 노동으로 근근이 유지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유지되다가는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인력을 구하기도 어려워지고 저임금 구조로 유지되는 서비스의 질을 이용자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라며 “서비스의 질은 고용의 질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 두 가지를 같이 끌어올릴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은 12개 구에 종합재가센터를 설치해 돌봄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고용을 보장하면서 이용자들에게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략으로 운영됐다”라고 말했다.

2021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요양노동자 노동현장 고발 기자회견에서 요양보호사가 증언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2021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요양노동자 노동현장 고발 기자회견에서 요양보호사가 증언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돌봄SOS’ 등 실질적 성과

서사원이 돌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면서 돌봄서비스의 질을 높인 실질적인 성과도 있었다. 서사원은 2019년 7월 성동구를 시작으로 은평, 강서, 노원에 종합재가센터를 열었다. 2021년 기준 총 12개의 종합재가센터를 설치 운영 중이다(노원종합재가센터는 2022년 10월에 갑작스럽게 폐지돼 논란이 됐다). 서사원은 종합재가센터를 중심으로 돌봄SOS, 코로나19 긴급돌봄 서비스, 중증 돌봄과 같은 민간기피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특히 ‘돌봄SOS’는 사회서비스원의 우수 사례로 꼽힐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돌봄SOS’는 서울시 자치구와 연계해 동 주민센터에 ‘돌봄SOS센터’를 설치하고, ‘돌봄SOS센터’를 통해 긴급돌봄 문의가 들어오면 서사원 종합재가센터에서 방문요양, 간호, 장애인 활동지원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과거에는 지자체 창구로 긴급돌봄 수요가 들어온 경우 민간기관과 연계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서사원이 12개 자치구에 종합재가센터를 설립하면서 민간이 하지 못한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평가다. 최현수 연구위원은 “서울시의 ‘돌봄SOS’ 는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민간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공공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회서비스원을 만들었다. 서사원은 지자체와 연계해 그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왔다”라고 말했다. 지난 7월 29일 보건복지부는 ‘2021년 시·도 사회서비스원 경영평가 결과 발표’ 보도자료에서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이 전 자치구와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공공전달체계 구축 및 사각지대 해소에 기여했다”라며 서사원의 ‘돌봄SOS’사업을 우수 사례로 평가했다. 지속가능 경영, 경영 성과, 사회적 가치를 5개 영역, 15개 지표로 나눠 전국의 사회서비스원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 서사원은 A등급을 받았다. 이용자 만족도 조사결과도 90.4점으로 평균(89.1점)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효율성을 잣대로 사회서비스원 존폐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1인 가구가 증가하는 등 생애주기별 다양한 돌봄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는 상황이다. 그에 맞춰 사회서비스원의 역할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양난주 교수는 “서사원은 지자체의 책임으로 이용자가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돌봄의 경로들을 만들어가야 할 역할이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는 비싸야 한다. 돌봄노동자들에 대한 교육도 많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서비스는 방문 시간만으로 노동력을 계산해 비용을 지불하는 기존의 방문 요양서비스보다 훨씬 비싼 서비스일 수밖에 없다. 비싼 서비스이다 보니 공공이 투자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질 좋은 서비스를 민간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게 어떻게 1~2년 안에 되겠나”라며 “돌봄이 오랜 시간 가족, 특히 여성들에 의해 무상으로 지급되던 역사가 너무 길다 보니 돌봄에 돈을 써야 한다는 상상 자체를 못 한다. 낮은 인권의식으로 장애인, 노인 등에 대한 돌봄을 저렴한 비용으로 대충 맡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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